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서포에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11. 14. 14:00
경남 사천시
서포에서
바다 앞에 서면 우리 모두는 공손해진다.
어떤 거만함도, 위세의 발자국도
멀리서 달려와 발밑에 부서지는 포말에
눈이 먼 기도문이 된다.
바다의 푸른 팔뚝에 문신처럼 박힌
거룩한 포용을 가슴에 담을 뿐.
바다 앞에 서면 우리 모두는 서로의 섬이 된다.
보지 않으려 해도 볼 수밖에 없는 수평선으로 달려가
위태로운 줄타기의 광대가 되는 자신을 떠올리거나
수평선의 끝을 잡고 줄넘기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거나
무의식적으로 손을 길게 내밀어
고무줄처럼 수평선을 끌어당기고 싶다면
아직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이다.
좀 더 살아야 하는 것이다.
<시작 메모>
오랜만에 바닷가에 닿았다. 짙은 어둠 속을 더듬거리다 보니 문득 섬에 닿았다. 바다의 낭만 속에 숨은 온갖 생명들의 숨소리와 힘겨운 노동의 거룩함이 밤새 마음에 밀려왔다가 멀어져 갔다. 어부들은 살기 위해 바다로 나가고 어느 사람들은 잃어버린 자유를 찾기 위해 바다로 간다. 그저 바다는 한 권의 책. 누구나 저자가 되지만 그 무엇도 씌여지지 않은 책.
<마루문학 44호>
경남 사천시 코끼리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