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10. 3. 20:21

말의 행방

 

 

소문이 한바탕 지나간 뒤에

벙어리의 입과

귀머거리의 귀를 버리고서

잘못 들으면 한 마리로 들리는

무한증식의 말을 갖고 싶었다

검고 긴 머리카락과

길들여지지 않은 그리움으로

오래 달려온 튼실한 허벅지를 가진

잘못 들으면 한 마디로 들리는

꽃을 가득 품은 시한폭탄이 되고 싶었다

길이 없어도

기어코 길이 아니어도

바람이 끝내 어떻게 한 문장을 남기는지

한 마디면 어떻고

한 마리면 또 어떨까

 

 

천리 밖에서 나를 바라보는

야생의 그 말

 

- 시집『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시인동네 시인선077, 2017)

 

 

‘소문’, ‘벙어리의 입’, ‘귀머거리의 귀’등은 모두 진실의 소통과는 거리화되어 있는 기호들이다. 이 시의 서정적 자아는 이런 것들을 버리고서 ‘무한증식의 말’을 갖기를, ‘꽃을 가득 품은 시한폭탄’이 되기를 욕망한다. ‘무한증식’과 ‘시한폭탄’은 시간의 무한과 제한, 존재의 확장과 파멸이라는 점에서 대립되는 개념일수 있지만 불확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동일한 의미망에 자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잘못 들으면 한 마리로”, “잘못 들으면 한마디로”들릴 수 있다는 언표가 이러한 불확정성을 드러내는 유희적 장치라 할 수 있다.

 

서정적 자아가 욕망하는 것은 이 불확정적인 의미인 “야생의 말”이자 “길들여지지 않은 그리음”이다. 서정적 자아가 생각하는 시인이란 “길이 없어도/ 기어코 길이 아니어도” 끝내 문장을 남기는 ‘바람’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시의 말, 그 ‘야생의 말’은 늘 “천리 밖에서 나를 보”고 있기에 서정적 자아이자 시인 자신인 ‘나’ 또한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유동할 수 있는 ‘바람’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할 터이다.

 

위 시(들)에서 시란 무엇인지 명확하게 규정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확정적이고 적확할 수 없는 것, 오히려 자명하다고 인식되는 장의 빈틈 내지 구멍에서 시의 발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확인된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라면 시인이란 끊임없이 ‘야생의 말’,‘길들여지지 않은’무엇을 찾아 헤매는 존재라 할 수 있으며이 ‘헤맴’이야말로 시인의 임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박진희 평론집 『말의 정신』( 지식과 교양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