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를 만나다

세계 최대 규모의 불교대사전...40년 대장정 끝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8. 2. 15:55

세계 최대 규모의 불교대사전...40년 대장정 끝내
중앙일보
입력 2024.08.02 00:23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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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종교전문기자

장장 42년에 걸친 대장정이다. 한국 불교계의 숙원 사업이었던 ‘가산불교대사림’(총 20권)의 편찬 작업이 최근 마무리됐다. 원고량만 34만 286장이다. 지금껏 출간된 불교백과사전 중에서 세계 최대의 규모다. 모두 20권이지만 권당 두께가 상당하다. 일반 단행본 서적으로 치자면 200권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서구 계몽주의식 사전 아니다

대장정을 이끈 주인공은 지관(智冠, 1932~2012) 스님이다. ‘국내 최고의 학승’으로 꼽히던 그는 동국대 총장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했다. 12년 전에 지관 스님은 입적했지만, 그의 유지를 이어서 가산불교문화연구원에서 42년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한 지관 스님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보따리에서 사전 원고를 꺼내서 작업을 했다. 사진 가산불교문화연구원

‘가산불교대사림’은 단순한 백과사전이 아니다. 단어가 나오면 사전적 정의를 설명하는 식이 아니다. 지관 스님은 그런 방식은 서구 계몽주의 시대의 사전이라고 비판했다. 환갑 때 제자들 앞에서 지관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계몽주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났는데, 우리가 굳이 계몽주의 사전을 내야 할 이유가 없다. 2000년이 훌쩍 넘는 불교 역사에는 개념을 정의하고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는 고유한 전통이 있다. 그 전통을 따르고자 한다.”

가령 ‘열반’이라는 표제어가 있으면 접근 방식부터 다르다. 불교에는 석가모니 붓다의 가르침을 담은 삼장(三藏)이 있다. 삼장은 경장(經藏, 붓다의 가르침)ㆍ율장(律藏, 승가의 규율)ㆍ논장(論藏, 붓다의 설법에 대한 연구)으로 나뉜다. 이걸 토대로 ‘열반’이라는 표제어가 어떤 경전의, 어떤 대목에서, 어떻게 쓰였는지를 일일이 사전에 기록한다. 강요는 없고, 선택지를 풍성하게 보여준다. 하나의 불교 용어에 대한 입체적ㆍ역사적ㆍ문헌적 이해까지 가능해지는 셈이다. 전례 없는 시도였다.

#일본 망월불교대사전 능가해

지관 스님이 불교 종합 대백과사전을 편찬하겠다는 뜻을 처음 세운 건 1982년이었다. 사연이 있다. 당시 일본에는 ‘망월불교대사전(望月佛敎大辭典)’이 있었다. 총 10권 분량의 불교대백과사전이다. 반면 한국에는 마땅한 불교대백과사전이 없었다. 시중에 나와 있던 이런저런 불교 사전은 대개 일본의 불교사전을 번역하거나 편집한 것들이었다.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연구실장 고옥 스님은 “한국 불교와 일본 불교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다. 더구나 불교는 삼국시대 때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종교”라며 “그런데도 한글로 된 마땅한 불교 사전이 없으니, 일본에서 만들어진 불교 용어를 그대로 옮겨 적는 사례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한국 불교사의 고유한 용어나 한국 절에서 한국 스님이 실제로 쓰고 있는 용어는 빠질 때가 많았다.

총 20권 분량의 가산불교대사림. 권당 두께가 두꺼원서 단행본으로 치면 총 200권 분량이다. 사진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이걸 본 지관 스님은 우리나라의 불교대사전이 필요하다고 절감했다. 처음에는 10년을 잡았다. 10년이면 사전 작업을 끝낼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막상 해보니 산은 더 높았다. 기초 항목을 만드는 작업에만 무려 8년이 걸렸다.

#연구소 설립 위해 은행 대출도

1991년에는 사전 편찬을 위해 아예 연구소를 세웠다.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아야 했다. 그때도 “10~15년이면 마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당시 전 세계에서 전산화 바람이 불었다. 불교 관련 방대한 데이터가 쏟아졌다. 그때부터 산스크리트어, 티베트어, 팔리어로 된 불교 사전의 표제어를 한글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거기에 또 4년이 걸렸다.


조게종 총무원장 시절 지관 스님이 북한 금강산에 있는 서산대사비를 찾았다. 지관 스님은 금석문의 대가이기도 하다. 사진 가산불교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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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불교사전 작업을 함께 할 손발이 없었다. 자격을 갖춘 연구원을 찾기도 어려웠다. 지관 스님은 대학을 다니는 학부생을 데려다가 직접 키웠다. 대학원 진학을 후원하고 석박사 학위를 딴 뒤 전문성을 갖추도록 했다. 그들에게 지관 스님이 물었다. “우리는 아무도 안 좋아하고, 쉽게 인정받지도 못할 일을 할 거다. 그래도 같이 할래?”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문은 물론이고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티베트어에도 밝은 연구원들이 비로소 생겼다.

#늘 들고 다니던 원고 보따리

지관 스님은 평소 늘 보따리를 하나 들고 다녔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할 때도 그랬다.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차담을 나누다가도, 손님이 돌아가자마자 보따리를 책상 위에 풀기 일쑤였다. 그 안에는 불교 사전 작업을 하던 원고지가 담겨 있었다. 고옥 스님은 “잠시라도 짬이 나면 원고 작업을 하셨다. 언제든, 어디서든 쉽게 펼쳤다가 다시 담을 수 있게 원고를 보따리에 넣고 다니셨다”고 말했다.


지관 스님이 평소 들고 다니던 보따리 속의 가산불교대사림의 원고 뭉치. 사진 가산불교문화연구원

‘가산불교대사림’ 편찬은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안의 연구원 25명, 원외에서 20명이 함께 했다. 총 사업비는 385억원이다. 예산은 늘 부족했다.

‘가산불교대사림’에 수록된 표제어는 11만9487항이다. 일본 ‘망월불교대사전’(7136항)은 물론이고 대만 ‘불광대사전’(2만2800항)보다 훨씬 큰 규모다. 사전편찬 작업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지관 스님은 “훗날 한국 불교의 유산이 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지금은 한국 불교의 크나큰 자랑거리가 됐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78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