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시인 첫걸음 시창작 4강
낭만시인 첫걸음 시창작 4강
■ 상식을 뒤집어 보기
모르는 사람
김나영
그가 뒤통수를 내어준다
나도 내 뒤통수를 깃털처럼 내어준다 뒷사람에게
우리는 뒤통수를 얼굴로 사용하는 사이
무덤덤하게 본척만척
서정과 서사가 끼어들지 않아서 깔끔하지
서로 표정을 갈아 끼우지 않아도
평생을 함께하지 반복해서 노력하지 않아도
서로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 권리를 위하여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
서로 헐렁헐렁한 고무줄 바지가 되지
어떤 좌석에 앉아서 굵고 짧은 잠에 빠져들 때
입을 벌리고 자도 보자마자 잊히니까
평화롭지 정면이나 측면이나 측백나무처럼
한결같지 동일하게 지루해도 숨통이 트이지
내 뒤통수와 모르는 사람의 뒤통수가
내 등뺘와 모르는 사람의 등뼈가
내 엉덩이와 모르는 사람의 엉덩이가 물컹하게 겹친 적 있다
몇 번을 앉았다 일어나도 뒤끝이 없지
포스트잇처럼
등을 깊게 파낸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총총 멀어져 간다
-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시작 시인선 0369, 2021)
■해설
보통 우리는 아는 사람이 많아 인간관계가 넓은 경우, 사회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김나영의 시 속에선 험담을 해도 아는 사람이 험담을 한다. 하긴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험담을 하겠는가. 모르는 사람과 우리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지 않을까. 그렇질 않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 모르는 사람과는 정을 나눌 일도, 이야기를 나눌 일도 없다. 모든 일은 관계를 맺고 아는 사람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작된다. 모르는 사람과는 그런 관계가 없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과는 관계가 깔끔하다. 모르는 사람과는 “몇 번을 앉았다 일어나도 뒤끝이 없”다. 세상의 모든 모르는 사람들이 뒤끝 없는 관계로 나를 스쳐간다. 시의 세상에선 세상의 모든 모르는 사람들에게 감사하게 된다.
- 김동원 (문학평론가)
■김나영
『예술세계』(1998)로 등단 . 시집 『왼손의 쓸모』,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편저 『홍난파 수필 선집』이 있음,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 알아두기
서정 抒情
서사 敍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