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3. 24. 14:06

나한 62
-텅 빈

새벽이 오기도  전에
거칠지만 겸손한 손으로
온갖 쓰레기를 거두어가는
당신이 없었다면

모두들 큰 길을 찾아 몰려갈때
혼자 없는 길을 만들어가는
당신이 없었다면

왼손이 하는 일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누추한 나의 허물을
기꺼이 자신의 옷으로 갈아 입는
당신이 없었다면

이 텅 빈 세상이 쓸쓸하기도 하여
화르르 피어 스르르 지는
봄꽃 같이 하염없이 울었으리

오체투지의 낮은 자세로
하늘을 우러르는 일을 알려주는
저 먼 지혜로 숨어있는
텅 비어 가득 찬
희망이라는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