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집 1993

코뿔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8. 25. 17:20

코뿔소

 

둥글둥글 살아가려면 적이 없어야 한다고 하시다가도

생존은 싸늘한 경쟁이라고 엄포도 놓으시던

어머님의 옳고도 지당하신 말씀

고루고루 새기다가

어느새 길 잃어 어른이 되었다

좌충우돌 그놈의 뿔 때문에

피헤서 가도 눈물이 나고

피하지 못하여 피 터지는

삿대질은 허공에 스러진다

이 가슴에 얹힌 묵직한 것

성냥불을 그어대도 불붙지 않는 나의 피

채찍을 휘둘러도 꿈적을 않는

고집불통 코뿔소다

힘 자랑하는 코뿔소들 

쏟아지는 상처를 감싸쥐고

늪지대인 서울에 서식한다

코뿔소들이 몰래 버리는

이 냄새나는

누가 코뿔소의 눈물을 보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