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집 1993

자폐일기 2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8. 6. 10:42

자폐일기 2

 

체납공과금 통지서처럼 봄은 온다

여기저기서 봇물 터지듯 만세소리 들리고

유관순 누나도 함께 온다

벗어라 낮은 물소리 귓가를 스치며

더욱 허리 굽혀 돌아나간 후

지난 겨울은 쓸쓸하였다

편지 한 통 오지 않았으므로

독백이 가득 찰 때까지 꽃은 피지 않을 작정이었다

빚처럼 목숨은 무거웠다

바다에 내리는 마리화나

마주치기 싫은 사람처럼 봄은 온다

벽으로 조금씩 다가서 온다

끓지 않는 피, 이 봄에

바꿔 입어야 할

옷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