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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이런 서점] [6] 연남동 스프링플레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5. 5. 27. 13:38

예술半 일상半… 베스트셀러 대신 영감을 팝니다

[우리 동네 이런 서점] [6] 연남동 스프링플레어

입력 2025.02.26. 01:28업데이트 2025.02.26. 18:25
 
서점 쇼윈도 앞에 앉은 이금강 스프링플레어 매니저. 그는 “쇼윈도에 전시하는 책도 일상과 예술의 균형을 고려한다”면서 “보통 문학 2권, 실용·라이프 스타일 2권, 미술책 2권 정도를 놓고, 그 아래 아트북이나 매거진 같은 큰 책을 놓는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일상을 예술(art)로 만드는 삶의 기술(art)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서울 연남동의 독립 서점 스프링플레어(springflare·봄의 불꽃이란 의미의 조어) 인스타그램 프로필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2018년 3월 문을 연 이 서점은 ‘일상 예술 서점’을 표방한다. 서점 운영을 총괄하는 이금강(34) 매니저는 “‘예술’이란 미술·디자인 같은 전통적 의미일 수도 있지만, 글쓰기 등의 기술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누군가의 인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책이라는 게 삶의 기술 그 자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책에서 얻는 크고 작은 배움과 영감이 독자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킵니다. 그래서 일상에서 만나는 책들이 더욱 특별하죠. 일상과 밀접한 다양한 분야 책들이 삶을 더 아름답고 즐겁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 벽 서가는 미술·디자인·건축·사진·일러스트 등 예술 분야 책이, 오른쪽 서가는 인문·사회·문학·라이프스타일 등 일상 분야 책들이 차지하고 있다. 모두 2000권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서점 왼쪽 '예술 서가'

 

스프링플레어가 판매하는 예술서는 서점 예술 코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 고흐 같은 유명 화가 관련 서적이 아니다. 재불 사진가 엄도현 작품집 ‘대구는 거대한 못이었다’, 개념미술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와 로니 혼의 관계를 다룬 외서 등 예술 관련 종사자나 미술에 대한 전문적 식견이 있는 독자들을 겨냥한 책이 대부분이다. 헤적프레스, 나선프레스 등 소규모 예술 전문 출판사들의 책도 적극적으로 입고하다 보니 독립 출판사들의 반응이 좋다. “일반 서점엔 없는 책들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작지만 확실한 수요가 있습니다. 손님들이 책을 사지 않더라도 살피기라도 하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책등이 아니라 표지가 잘 보이도록 진열합니다.” 일상적 책도 베스트셀러만 치중해 들여놓지 않는다. “뭔가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책, 오랜 여운을 줄 수 있는 메시지가 있는 책들을 두려고 합니다.”

서점 탄생 배경부터 독특하다. 현대미술 전문 화랑 갤러리바톤과 의료 기기 전문 기업 유파인메드가 손잡고 문을 열었다. 길 건너에 갤러리바톤이 운영하는 젊은 미술 작가들을 위한 전시 공간 챕터투(chapter 2)가 있다. 일종의 대안 공간으로 전시만 열고 작품 판매는 하지 않는 곳이다.

챕터투 전시가 있을 때마다 전시 작품 중 한 점을 서점에 걸고 전시 소개 전단도 비치한다. ‘전시와 책’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 감상 전후에 읽기 좋은 책도 소개한다. 전시를 보러 온 관람객이 서점을, 서점에 온 손님들이 전시회를 찾을 수 있도록 기획했다. “전시장과 서점이 유기적으로 호흡하며, 젊은 예술가들을 후원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자 하고 있어요. 맛집 위주의 가게가 늘어서 있었던 연남동에 문화 공간이 들어서는 게 의미 있다 생각했어요.”

 
서점 오른쪽 '일상 서가'

 

서점 쇼윈도엔 책더미 위에 서 있는 나무로 된 얼굴을 한 캐릭터, 화병과 과일 등의 정물과 고양이 등을 경쾌하고 장난스러운 필치로 묘사한 그림이 흰 마커펜으로 그려져 있다. 일본 미술가 유이치 히라코의 작품. “작가가 갤러리 바톤 전시차 내한했을 때, 저희 서점과 작품이 잘 어울릴 것 같아 그림을 그려 달라 부탁했어요. 쇼윈도는 사람을 끌어야 하잖아요. 저 그림이 생긴 이후로 길 가던 분들이 사진도 많이 찍고, 우연히 서점에 들어오는 분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월 방문객은 약 900명, 연남동 골목길에 사람이 몰리는 연말이면 1200명 정도까지 늘어난다. 월 판매량은 500권 정도다. 서점에 들르는 손님 30~40% 정도가 책을 사는데, 평일에 오는 손님 비율이 높다. 손님 중 여성이 70% 정도인데, 특히 2030 여성이 많다. 계산대 옆 벽면은 잡화 및 필기구 코너로 꾸몄다. “책 좋아하는 분 중 문구를 좋아하는 분이 많거든요. 팔로미노의 블랙윙이나 까렌다쉬의 에델바이스 같은 ‘연필의 고전’을 소개하고 있어요. 엽서나 일력도 인기가 있습니다.”

이금강 매니저는 대학에서 광고홍보학을 전공했다. 취업준비를 하던 중 서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아예 서점으로 방향을 틀었다. 스프링플레어에서 일한 건 2021년 5월부터. 책 큐레이션뿐 아니라 작가들을 초청해 북토크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일을 담당하고 있다. ‘어떤 분위기의 서점을 지향하냐’ 물었더니 “언제나 ‘균형’을 생각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일상과 예술의 밸런스를 맞추려 하고 있습니다. 독립 서점이 살아남으려면 그 서점만의 정체성이 중요한 것 같아요. ‘예술’을 고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특색 있게 살려 보려 합니다.”

[스프링플레어의 PICK!]

요즘 가장 꾸준히 팔리는 책은=시각예술가 박혜수 에세이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돌베개). 작가 노트를 겸한 책인데 한 달에 5권 이상, 1년에 50~60권씩 꾸준히 나간다.

매일 서점 문을 열 때 트는 음악=스티브 건과 데이비드 무어의 ‘Over the Dune’. 가사가 없고 멜로디가 부드러워 책에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 있다.

서점에서 소개하고픈 고전=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두 자매가 주인공인데 한 사람에겐 예술가 기질이 있고, 다른 한 사람은 현실적인 인물이다. 예술과 일상의 관계를 고민하는 우리 서점과 잘 어울리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