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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전사의 검과 여성 장신구 함께 발굴된 핀란드 무덤 50년 미스터리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8. 17. 11:43

1000년 전 무덤서 나온 ‘여장 바이킹’… DNA 검사 했더니

[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전사의 검과 여성 장신구 함께 발굴된 핀란드 무덤 50년 미스터리
DNA 검사로 남·여 특징 같이 가진 ‘클라인펠터 증후군’으로 밝혀져
존경 표시 깃털 흔적도… “사회적 존중, 성별 아닌 기여에 따른 것”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2021.08.17 03:00

 

 

 

 

 

일러스트=이철원

 

지난 도쿄 올림픽에서 한 국가대표 여자 선수를 두고 젠더(성) 논란이 불거졌다. 이 선수는 짧게 자른 머리 때문에 인터넷에서 ‘페미니스트 아니냐’며 부당하게 공격을 받았다. 우주 관광을 가는 시대에 특정 외모로 성(性)을 규정하는 시대 역행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도 선수는 운동하기에 편해서 짧은 머리를 한다고 담담하게 대응했다. 과녁 앞에서 1점 차이를 두고 메달을 다투면서도 흔들림 없던 모습 그대로였다.

 

겉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언제나 옳지 않다. 1968년 핀란드 남부의 하툴라에서 1000년 전 무덤이 발견됐다. 유골과 함께 장검 두 점과 칼집에 꽂힌 단검 같은 무기가 나와 당연히 바이킹 전사가 묻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유골 주변에서 예상치 못한 부장품도 발굴됐다. 달걀 모양 브로치와 같은 장신구들과 양털로 짠 옷은 중세 초기 전형적 여성 복장이었다. 바이킹 시대 남자나 여자라면 으레 이런 모습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50년 넘게 학자들은 무덤 주인을 두고 골머리를 앓았다. 어떤 학자는 강력한 남성 지도자가 아내와 같이 묻혔다고 주장했다. 다른 학자는 중세 핀란드에도 강력한 여성 전사, 또는 여성 지도자가 있었다는 증거라고 반박했다. 유골은 답을 주지 못했다. 유골이 1000년을 넘으면 남녀가 거의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핀란드 투르쿠대 고고학과 연구진은 같은 대학 생물학과 교수와 헬싱키대 유전학 연구자에게 반세기 전에는 할 수 없던 DNA 분석을 의뢰했다. 지난달 15일 ‘유럽 고고학 저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유골 주인공은 한 사람이며, 남성도 여성도 아니었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은 성염색체 X를 두 개 가지며, 남성은 X와 Y를 하나씩 갖고 있다. 무덤 주인은 성염색체가 X가 하나 더 있는 XXY 남성이었다.

의학에서는 남성이 X 성염색체를 두 개 이상 가진 것을 클라인펠터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660명당 1명꼴로 비교적 흔하게 발생한다. 1942년 미국 의사 해리 클라인펠터가 처음으로 남성이 여성처럼 가슴이 부풀고 고환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증상을 기술했고, 1959년에 그 원인이 성염색체 이상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무덤 주인이 여성 옷차림을 한 남성 또는 여성의 일을 한 남성이었지만 당시 사회에서 멸시나 배척 대신 존경을 받았음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유골 머리맡에는 동물의 깃털 흔적이 있었다. 이는 지위가 높은 사람을 매장할 때 깃털을 넣은 베개로 머리를 받친 풍습을 반영한다. 또 부장품 중 구리 손잡이가 달린 칼은 나중에 무덤에 찔러 넣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또한 후대인이 고귀한 사람 무덤에 존경의 뜻을 표시하는 행동으로 해석됐다.

 

1000년 전 핀란드 무덤에서는 장검, 단검 등 남성을 상징하는 무기와 함께 여성 의류와 브로치 등 장신구들도 나왔다. 왼쪽은 유골과 부장품 묘사도이며, 오른쪽은 매장 당시 상상도./유럽 고고학 저널

 

최근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 성별을 벗어난 사람을 논바이너리(non-binary)라고 부른다. 핀란드 연구진은 “용어는 현대인이 만들었지만 논바이너리 자체는 중세부터 존재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어쩌면 더 오래됐을지 모른다.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과 신화학자 카를 케레니는 공저 ‘신화학 입문’에서 고대부터 남성과 여성 모습을 모두 가진 양성구유(兩性具有)를 완전성의 상징으로 여겼다고 썼다. 고대 이집트 제18 왕조의 5번째 파라오였던 하트셉수트는 때론 여성으로, 때론 남성 모습으로 묘사됐다. 로마 3대 황제 칼리굴라는 베누스 여신 분장을 즐겼고, 23대 황제 엘라가발루스는 양성구유의 신을 자처했다고 알려졌다.

핀란드 무덤은 결국 인간은 남성과 여성의 틀이 아니라 한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기여하고 그에 맞는 존경을 받아야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임을 말해준다. 하지만 현대사회도 그렇지 못하다. 심지어 가장 객관적이어야 할 과학에서도 성별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일이 벌어진다.

지난달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저명한 의학 학술지에 실린 논문 5554편을 분석했더니 제1 저자와 교신 저자가 모두 여성이면 남성 저자보다 다른 논문에 인용되는 횟수가 절반에 그쳤다고 ‘미국의학협회 저널(JAMA) 네트워크’에 발표했다. 그러다 보니 여성 과학자들은 성과를 내고도 스스로 위축된다.

프린스턴대 연구진은 지난 5일 ‘교육심리학 저널’에 연구 중심 대학 9곳에서 4000여 여성 과학자를 조사했더니 자신의 성과를 스스로 부정하는 ‘가면(假面) 현상’이 팽배했다고 밝혔다. 현재가 참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언제 가면이 벗겨질지 모른다며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과연 다시 1000년 뒤 고고학자들은 우리 사회를 어떻게 설명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