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고인은 ‘기방(妓房) 예술’로 치부되던 살풀이춤 등 전통춤을 본격적인 무대예술로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예인이었다. 타고난 춤솜씨로 일개 지역 춤사위에 불과하던 목포 등지의 기생춤을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춤으로 끌어올렸다. 70∼80년대 대학 무용과의 교과 과목으로 채택되는 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특히 8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로, 90년 제97호 살풀이춤 보유자로 선정됐다. 유일한 두 분야 예능보유자였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 공연에 참가하는 등 한국 춤 해외 소개에도 앞장섰다.
고인은 생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직하고 마음이 고와야 춤을 잘 춘다. 머리 굴리면 춤이 안 된다”고 밝혔었다. 살풀이춤 전수조교인 제자 김정녀씨는 “선생님은 춤에 관한 한 찍소리도 못할 만큼 엄하게 가르치셨다”고 회고했다. 지난해까지 무대에 섰을 정도로 춤 사랑이 지극했다. 자신의 무대의상은 물론 제자들 의상까지 손수 만들어 입힐 만큼 열정이 넘쳤다.
유족으로 부인 김명자 여사, 딸 이현주씨, 사위 이혁열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4호, 발인은 10일 오전 7시30분, 장지는 경기도 광주시 시안가족추모공원. 02-3410-6914.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